선조수정실록_귤강광(타치바나야스히로)

선조수정실록_귤강광(타치바나야스히로) 귤강광(橘康廣=타치바나 야스히로) 본명 : 유즈야 야스히로(柚谷康広) // 선조수정실록 21권, 선조 20년 9월 1일 정해 3번째기사 1587년 명 만력(萬曆) 1587년 명 만력(萬曆) 15년 일본 국사 귤강광이 내빙하다 국역 일본 국사(日本國使) 귤강광(橘康廣)이 내빙(來聘)하였다. 일본에 천황(天皇)이 있어 참람하게 기원(紀元) 을 호칭하나 국사에는 간여하지 않고 국사는 관백(關白)이 청단(聽斷)한다. 관백을 대장군(大將軍)이라 부르기도 하고 대군(大君)이라 부르기도 한다. 황(皇)과 왕(王)의 칭호가 같기 때문에 관백을 왕이라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원씨(源氏)가 관백 노릇한 지 2백여 년이 되었는데 평수길(平秀吉)이 그를 대임하였다. 평수길은 본디 천례(賤隷)로 조상의 유래를 모르는 사람이다. 관백이 품팔이하며 빌어먹는 것을 발탁하여 군사로 삼았는데 전투를 잘하여 많은 공로를 쌓았기 때문에 대장이 되었다. 관백의 정월(旌鉞) 을 빌어서 먼 지방의 반역자를 토벌하기에 이르렀는데 국인이 그의 참월(僭越)함에 분노하여 도리어 관백을 공격해 죽였다. 수길이 회군하여 전쟁에 승첩하고 이어서 원씨(源氏)를 대대적으로 살해하고 스스로 관백이 되었다. 군사를 동원하여 사방에서 승리를 거두어 제도(諸島)를 병탄하였는데 영토가 66주이며 정병 1백만을 훈련하였으니 일본이 이처럼 성대함은 옛날에 없었던 일이다. 평수길은 오만하여 의기양양한데다가 또 국내의 환란을 염려한 나머지 드디어 중국을 침범하려 하였다. 그러나 전세(前世)에 뱃길로 절강(浙江)을 침범하려 하다가 끝내 뜻대로 되지 않았으므로 먼저 조선을 점거하여 육지로부터 진병(進兵), 요계(遼薊)를 엿보려 하였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에서는 전혀 들어 아는 바가 없었으니, 이는 그 나라는 법이 엄하여 행인(行人) 이 한 마디 말도 누설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평수길이 자기의 임금을 시해하고 나라를 찬탈한 것을 처음 들었으나 또한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 평수길...

프로이스 일본사 보면 히데요시가 잠깐 식물인간 된적 있는데 그때 막 길거

프로이스 일본사 보면 히데요시가 잠깐 식물인간 된적 있는데 그때 막 길거 ===테마 음악====== https://youtu.be/9PeluiSmHQU?si=L9Yjjyf_8RTFvQIP ============= 프로이스 일본사 보면 히데요시가 잠깐 식물인간 된적 있는데 그때 막 길거리 깡패들이 히데요시 죽었다고 야호 도적질하자 하며 길거리가 금새 베어너클이 되었다고함 근데 히데요시가 다시 깨어나니 분노의 길거리 상태 해제됨.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일으킨 이유 중 하나가 서일본 사무라이들은 물론이고 일본열도 사무라이들 그 흉악한 것들 해외 출병 안 시키면 지들 불평 불만 스트레스를 날마다 평민 천민에게 약탈 방화 폭력 살인으로 풀어버리는데. 그럼 걔들 다 극형으로 처벌시키고 그러면 처음엔 끙하고 참아도 결국 또 센고쿠 시대 또 벌어질지도 모름. 그래서 해외 출병을........ 그래서 걔들은 해외로 출병시켜 고생해서 사람 만들어야함 그래서 사람 되어서 덕천씨가 통치하던 덕천 막부 시기에 조선통신사 왔을 때 사무라이들이 막 싸인좀요 이러잖음 그리고 임진왜란 때 무슨 한산도해전에서 와키자카 수군은 수백 따리인데 무슨 1만명 대군으로 포장시키네 에휴 뻥순신 이러고 일뽕들이 개지랄병 떠는데 그건 국뽕 망상이 아니고 이순신의 한산도 해전 승전 장계에서 자기가 침몰시킨 아타케부네 37척 세키부네 23척 고바야부네 13척 이렇게 각 숫자들이 소상히 보고되어있어서 그 선박들의 승선 인원이 얼만지 다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데이터가 일본 쪽에 있으므로 그것에 따라서 계산한거임. 일뽕 새끼들 시발 공부하라고 진짜. 그러면 의문이... 와키자카는 무슨 몇천석 몇만석 뭐 대충 그런 다이묘이고 자기 영지의 인구 그렇게 많지도않은데 거기서 임진왜란 때 차출한 군사 숫자도 일본측 기록 보면 애개개 이 정도인데. 일뽕들이 간과하는게 있음. 그건 와키자카의 본군에 불과함. 즉 사무라이들,평민들이고. 그 외의 9천명은 아마 천민들일거임. 천민들은 그냥 적지도않은..... 소위 '규슈 해...

고정 답변_히데요시 빨리 안 죽었으면 명나라,조선 둘 다 졌을 전쟁

고정 답변_히데요시 빨리 안 죽었으면 명나라,조선 둘 다 졌을 전쟁 질문 : 병신 ㅋㅋㅋ 그당시 명을 좆으로 보네 수군은 이순신한테 털리고 육군은 명한테 털리고 히데요시 좀 더 살았어도 걍 패전은 정해져있는건데 답 :ㄴ 그건 니가 잘못 아는거고 「명사 조선전」 보면 "왜倭가 조선朝鮮을 어지럽힌 지 7년 동안 잃은 군사가 수십만이나 되고, 소모한 군량이 수백만이나 되었는데도  중국中國과 조선朝鮮이 이길 가망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는데, 관백關白註 786이 죽고서야 화란禍亂이 비로소 종식되었다註 787  自倭亂朝鮮七載, 喪師數十萬, 糜餉數百萬, 中朝與屬國迄無勝算, 至關白註 773死而禍始息.註 774 "_명사 조선전"라고 나와

임진왜란의 일본군 철수는 아프간,베트남전에서의 미군의 철수하곤 경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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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일본군 철수는 아프간,베트남전에서의 미군의 철수하곤 경우가 다르다. 아프간 베트남은 미군이 이길 가망이 없고 막막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은 일본이 너무 왜성들 잘 짓고 일본쪽으로부터의 보급도 원활하고 왜성들 지역 조선인들도 일본군의 통치에 잘 협조하고,.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는 일본군에 의해 피바다 불바다가 되어있었고 명나라 조선 연합군은 왜성 치다가 연거푸 개털려 많이 뒤지고,  명나라는 군량 대느라 끙끙끙 국고 털리고, 조선은 재정 궁핍해져서 끙끙대서  풍신수길이 계속 좀만 더 살았다면 명나라,조선은 GG쳤기 때문에(명사 조선전에도 그리 적혀있고)  고로 아프간전 베트남전하고는 경우가 다르다. 당시 일본은 국민,민족주의 없어서  사무라이 다이묘들이 전쟁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걔들은 자기들 영지 관리하는 내정 놀이하며 놀고싶은데 괜히 지들 돈 부어가며 전쟁해야되니까 개빡치는거고. //명사 조선전의 기록 ○[만력萬曆] 26년(A.D.1598; 朝鮮 宣祖 31) 11월에 [가등加藤]청정淸正이 배를 내어 먼저 달아났다.  마귀麻貴는 드디어 도산島山·서포酉浦註 783에 들어갔고,  유정劉綎은 예교曳橋를 공격하여 탈환하였다. 석만자石曼子가 배를 이끌고 [소서小西]행장行長을 구원하려 하자,  진린陳璘이 이를 맞이하여 쳐부수어 패배시켰다.註 784 여러 곳의 왜군倭軍이 돛을 달고 모두 돌아갔다.註 785 왜倭가 조선朝鮮을 어지럽힌 지 7년 동안 잃은 군사가 수십만이나 되고, 소모한 군량이 수백만이나 되었는데도  중국中國과 조선朝鮮이 이길 가망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는데, 관백關白註 786이 죽고서야 화란禍亂이 비로소 종식되었다註 787"_명사 조선전 ○ [萬曆 二十六年(1598)]十一月, 淸正發舟先走, 麻貴遂入島山·酉浦校勘 177註 770, 劉綎攻奪曳橋. 石曼子引舟師救行長, 陳璘邀擊敗之.註 771 諸倭揚帆盡歸.註 772 自倭亂朝鮮七載, 喪師數十萬, 糜餉數百萬...

명사_조선전(작성 중)

 명사_조선전(작성 중) //목차  조선(朝鮮) 朝鮮은 箕子에게 封하여 준 나라이다. 後唐 때 王建이 高氏를 대신하여 [일어나] 元의 至元 연간(A.D.1335~1340; 高麗 忠肅王 復位 4~忠惠王 復位 1)에 明이 건국하였을 때 高麗의 왕은 王顓이었다. 그 해 가을에 顓이 總部尙書 成惟(准)得과 [洪武] 3년(A.D.1370; 高麗 恭愍王 19) 정월, 사신을 보내어 [洪武] 5년(A.D.1372; 高麗 恭愍王 21)에 子弟들을 보내어 [洪武] 6년(A.D.1373; 高麗 恭愍王 22)에 顓이 [洪武] 8년(A.D.1375; 高麗 廢王 禑 1)에 禑가 [洪武] 10년(A.D.1377; 高麗 廢王 禑 3)에 사신이 와서 [洪武] 11년(A.D.1378; 高麗 廢王 禑 4) 4월, 禑가 다시 [洪武] 13년(A.D.1380; 高麗 廢王 禑 6) 遼東에서 [洪武] 16년(A.D.1383; 高麗 廢王 禑 9)에 공물을 보내 [洪武] 17년(A.D.1384; 高麗 廢王 禑 10) 6월에 禑가 [洪武] 18년(A.D.1385; 高麗 廢王 禑 11) 정월에 貢使가 [洪武] 19년(A.D.1386; 高麗 廢王 禑 12) 2월에 사신을 보내어 [洪武] 21년(A.D.1388; 高麗 廢王 禑 14) 4월에 禑가 [洪武 21년(1388)]8월에 高麗의 千戶 陳景이 來降하며 말하기를, [洪武] 22년(A.D.1389; 高麗 廢王 昌 1)에 權國事 昌이 [洪武] 24년(A.D.1391; 高麗 恭讓王 3) 3월에 高麗에 가서 [洪武] 25년(A.D.1392; 朝鮮 太祖 1) 9월, 高麗의 [洪武] 26년 (A.D.1393; 朝鮮 太祖 2) 2월, 사신을 보내어 [洪武] 28년 (A.D.1395; 朝鮮 太祖 4) 柳珣(玽)을 建文 年間(A.D.1399~1402; 朝鮮 定宗 1~ 太宗 2) 초, 旦이 永樂 원년(A.D.1403; 朝鮮 太宗 3) 정월에 芳遠이 [永樂] 2년(A.D.1404; 朝鮮 太宗 4) 12월, 芳遠의 [永樂] 6년(A.D.1408; 朝鮮 太宗 8)...

[정보] 일본군은 보급이 끊겼을까? 고갤러(58.229) 2023.12.24 11:01:22조회 40 추천 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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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 일본군은 보급이 끊겼을까? 고갤러(58.229) 2023.12.24 11:01:22조회 40 추천 8 댓글 2 울산성 밖에 있는 울산병영성쪽 일본군 진지에서 일본군이 울산성 쪽으로 전부 후퇴하자 탈환한 후 살펴보았더니 왜적의 토산쌀만 가득했다고 함 즉 본토와의 보급은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거 それらの城塞をできるかぎり堅固なものにしようと考え、日本で行うのと同様に、切断しない石を用い、壁も砦も白く漆喰を塗り、天守と呼ぶ高い塔を設け、一城ずつに丹誠を籠め、互いにその出来栄えを競い合った。関白から任命された三名の武将によって食糧と弾薬 ――それらは実に豊富で、一五九五年の九月まで十分持ち堪えることができるほどの量があり、彼らはその分配のために関白から任命されていた―― が分配され終ると、それらの城塞には・・・ 完訳フロイス日本史5 豊臣秀吉篇II P276 그 성채들을 가능한 한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일본에서 행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단하지 않은 돌을 이용하여 벽도 성채도 하얗게 회반죽을 칠하고 천수라 부르는 높은 탑을 설치하여 한 성씩 정성을 들여 서로 그 완성을 겨루었다.칸파쿠에서 임명된 세 명의 무장에 의해 식량과 탄약 그것들은 정말 풍부했고, 1595년 9월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양이 있었고, 그들은 그 분배를 위해 칸파쿠에서 임명되었다-- 가 분배되면, 그 성채들에는... 완역 플로이스 일본사 5 도요토미 히데요시 편 II P276 루이스 프로이스 일본사에서도 왜성마다 식량과 탄약이 풍부했다고 기술함 急度被仰出候、被越置候御城米之儀、彌古米ニ不成之様、手前兵糧ニ取替召遣、具数無相違、元程可積置候、釜山浦幷かとかい(加徳島)東萊・竹島等ニ有之分、莫大之儀候條、為御奉行、福島左衛門大夫・毛利民部大輔、被仰付候、手前御城米引加、惣人数多少ニ付令割符可積替候・・・ 『(文禄三年)五月二十四日付・豊臣秀吉朱印状』 日本戦史. 朝鮮役 (文書・補伝) 文書第175号 히데요시가 1594년 (문록3년) 보낸 주인장에서도 마찬가지임 부산·가덕도·동문·다케시마(김해) 등의 왜성에 막대한 양의 병량이 비축되어 있어 이들이 썩지 않...